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지코 F. 후지오 (문단 편집) == 생애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M2CtpDT-3UU)]}}}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qX7NWp6Y7UY)]}}} || || {{{#ffffff ''' 생애 다큐멘터리 ''' }}} || 1933년 12월 1일 출생으로, 어린 시절 병치레를 자주했다는 이유로 따돌림에 시달린 적이 있었다.[* 이 어린 시절에서 착안해 만들어낸 캐릭터가 바로 대표작 도라에몽의 [[노진구]]다.][* 이 경험이 자라서 영향을 미쳤는지 데뷔 후에도 종종 [[TV]] 출연, [[논술]], 골프 등을 즐기던 [[후지코 후지오 A]]와는 다르게 대외적인 활동은 많지 않았고 만화들을 집필하는 데에 전념하였다.][* 이 영향인지 88세까지 장수했던 [[후지코 후지오 A]]와 달리 평균 수명이 80살을 웃도는 최장수 국가로 유명한 일본에서 62세라는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평생의 절친 [[후지코 후지오 A]]를 만났으며, A와 매일같이 서점을 찾아 출간된 지 얼마 안 됐던 데즈카 오사무 만화들의 초판을 모두 사서 모으기도 했다.[* 후지코 F. 후지오의 인생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데즈카 오사무]]로, 생전 데즈카를 스승처럼 존경했었으며 그의 작품들에 매우 감격한 나머지 아무한테나 그 만화들을 보여주면서 상대가 다 읽을 때까지 곁에 있었는데, 그다지 재미있어 하지 않으면 바로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고 한다.] 극초기 그림체는 데즈카 오사무의 판박이었으며, 데뷔 초기 필명도 데즈카 오사무에서 따온 "아시즈카 후지오"라는 필명을 사용했었을 정도. 데즈카의 작품에 특별한 생각을 가지며 언젠가 그와 같은 멋진 작풍도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데즈카를 무척 신봉했던 나머지, [[월간 코로코로 코믹]]의 초대 편집장이 테즈카에 대해 비판을 토로하자 무척 분노하여 1주일 가까이 사무소에 출입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우선 취직하기로 마음먹어 제과 회사에 취직하기도 했으나,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로 만화를 그릴 수 없을 것을 두려워해 며칠 뒤 그곳을 나왔다. 하지만 만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봄방학 시기에 A와 같이 테즈카 오사무를 만난 적도 있었다. 이 무렵 자신이 과연 만화가로서 잘 해나갈수 있을지 불안했었는데, 데즈카한테 너희라면 해나갈 것이란 말을 듣고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그 후론 집에서 만화를 집필하는데 전념하며 휴일엔 신문사에서 일하던 A와 함께 만화를 그렸고, A를 꾸준히 권유한 끝에 1954년 [[도쿄]]로 도착해 후지코 후지오로 필명을 바꾸고 [[토키와 장]]에 입주해 다른 동료 만화가들의 작업을 보조하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제로를 설립한 후론 잡지 연재도 시작하였으며, A와 공동으로 그린 [[오바케의 Q타로]], 자신의 단독 만화인 [[퍼맨]]은 상당한 히트를 쳤으나 21에몽, 우메보시 덴카, [[우주에서 온 모자코]]는 오래가지 않아 연재가 종료되는데 그치면서 몇년간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었다. 당시 후지코 스튜디오에선 에비하라 타케시 등의 일부 지원들을 제외하곤 [[괴물군]], [[웃는 세일즈맨]], 마타로가 온다! 등을 연재하던 A를 중심적으로 지원했었으며, 후지코 F. 후지오는 주간 [[소년 선데이]]의 편집장에게 자신을 선데이 작가진에서 분리해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기도 했다. 그러던 중 빅 코믹에서 집필 요청 의뢰를 받았고, 후지코 F. 후지오는 자신의 만화가 [[청년만화]]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여 처음엔 이를 거절했으나 편집장의 열렬한 요청에 따라 마지못해 승낙했다. 이때 그린 단편은 '[[미노타우르스의 접시]]'로, 빅 코믹 편집부에서 호평을 얻었으며 자신도 이런 것이냐라는 새로운 [[장난감]]을 [[손]]에 넣은 듯한 기쁨이 있었다고 후에 밝혔다. 1969년 쇼가쿠칸 유아잡지 <요이코>에 대표작이자 국민 만화 '''[[도라에몽]]'''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4년 뒤인 1973년에 [[도라에몽(1973년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이 종영하면서 편집부에서도 연재를 종료시키려 했다. 후지코 F. 후지오는 이에 반발하며 도라에몽의 연재를 속행했고 그 결과 도라에몽은 6년이 지난 1979년 TV 아사히에서 다시 애니메이션화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후지코 후지오 A의 작품들 또한 애니메이션화되어 보다 많은 인지도를 쌓는 계기가 되었다.[* 후일담에 따르면, F는 1979년 재애니화 당시 이미 [[도라에몽(1973년 애니메이션)|1973년에 실패한 경험]] 때문에 TV 애니메이션화에 굉장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새로운 신에이 동화의 엄청난 어필과 요청에 애니화를 수락해주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테레비 아사히]]판 도라에몽은 모두가 다 알 듯 44년째 방송되며 '''일본을 넘어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국민 애니메이션으로 부상했다.'''] 1987년 콤비를 해체한 뒤 후지코 후지오 Ⓕ로 필명을 변경해 활동했지만 1년 뒤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권유로 F를 이름 가운데에 넣는 지금의 필명으로 바꾸었다. 콤비가 해체되었음에도, 서로 평화롭게 해체하면서 친구인 A와는 서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2>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zu0lJwqxLI)]}}} || || {{{#ffffff ''' 사망 당시 뉴스 ''' }}} || 이후 성치 않은 몸으로 한창 활동을 지속하던 1996년 9월 20일, 가족이 저녁 준비를 이야기하면 평소 작업실에서 대답했던 것과 달리 시간이 지나도록 식탁에 오지 않아 딸이 이상하게 생각해 부르러 갔다가 책상에 앉아 의식을 잃은 상태인 부친을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도라에몽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 62페이지를 그리다가 연필을 잡은 채로 쓰러졌으며,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3일 후인 9월 23일 새벽 2시 10분에 [[도쿄도]] [[신주쿠구]] [[게이오기주쿠대학]]병원에서 간부전으로 향년 62세에 세상을 떠났다. 본인도 이전부터 운명을 예감했는지, 도라에몽 노비타의 태엽도시 모험기의 줄거리를 쓰기 전 [[시바야마 츠토무]]한테 미리 알려주거나 사후 자기 작품들의 행방과 후지코 프로덕션의 활동 등에 대해 걱정을 보인 내용을 쓴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2006년 2월 19일 [[테레비 아사히]]에서 방송된 '도라에몽 탄생 이야기 ~ 후지코 F. 후지오의 편지 ~ '에 따르면, 1986년 위암이 발견되어 이후 컨디션을 무너뜨리는 현상을 가졌던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90년대에 도라에몽 14주년 영상 등 본인이 출연한 생전 영상만 봐도, 그리 건강해보이는 모습은 아니었다.] 또한 1992년 간암으로 투병할 당시 코로코로 코믹에서의 대장편 도라에몽 작품 [[노비타와 구름의 왕국]] 연재를 일시적으로 중단해 후지코 프로덕션에서 비주얼 스토리를 게재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하였다. 그가 사망한 후 평생의 동료였던 후지코 후지오 A는 당시 인터뷰에서 "마음은 혼란스럽고, 솔직히 오늘 아침부터 계속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어요. 몹시 유감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이죠. 그는 대단한 [[천재]]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있었기 때문에 만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순수한 마음의 남자였어요."라고 말했다.[* 이후 A는 만화의 길의 속편 만화에서 F를 추모하는 작품인 '안녕 친구여'를 집필하며 친구를 기렸다.] 9월 29일 장례식이 진행됐을 때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참석하였고, 현장에서 당시 도라에몽의 성우 [[오오야마 노부요]]는 눈물을 쏟기도 했다.[* 같은 날 그를 추모하는 특집 프로 [[노비타의 일본탄생]]이 TV 아사히에서 방송되었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애도가 이어졌다. [* 이 당시 F를 추모하는 물결이 더욱 컸던 것은 62세라는, 장수 국가 일본에서 상당히 젊은 나이에 타계한 점도 컸다. 60대였으므로 엄청 짧게 산 건 아니지만 평균 수명부터 80을 넘기는 일본에서 이 정도면 요절에 가깝다.][* 사실 만화가는 워낙 촉박한 일정과 빡센 생활 패턴으로 오래 살지 못하는 대표적인 직업으로 꼽힌다. 당장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도 60세까지 살았고, 토키와 장에 함께 거주한 [[이시노모리 쇼타로]]도 60살이 되고 3일 후 타계했다. 오히려 전쟁 중에 팔 한 쪽 잃고서도 건강한 생활을 하다 93세까지 장수한 [[미즈키 시게루]]나 골프 등을 즐기며 88세까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긴 [[후지코 후지오 A]]가 희귀 케이스에 가깝다.] 이후 2000년에 [[소학관]]은 한정판 후지코 F. 후지오 복제 원화집을 발매하였으며, 2006년엔 [[후지코 F. 후지오 뮤지엄]]의 설립이 공식 발표되었고, 2008년 12월 건설예정지가 확정지어져 2011년 9월 3일 개관하였다. 소학관은 2009년에 후지코 F. 후지오 대전집의 발매를 발표하였고, 2014년까지 총 115권으로 출간하였다. 그의 타계 후 약 26년이 지난 2022년 4월 7일, 평생의 친구이자 파트너였던 후지코 후지오 A도 향년 88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해 친구의 곁으로 떠나면서, 일본 만화계의 전설적 듀오였던 후지코 후지오는 만화 역사의 찬란한 한 페이지가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